이토 우사부로(伊藤卯三郞)가 1923년 2월에 경성에서 창간한 한글 월간 여성지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제2호는 1923년 3월 15일에 발행한 3월호이다. 인쇄인은 이의순(李義淳), 인쇄소는 동아인쇄소, 발행소는 부인계사, 정가 20전이다. 정기 발행일은 매월 15일, 경성의 본사는 대구와 평양, 그리고 수원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편집겸발행인인 이토 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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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우사부로(伊藤卯三郞)가 1923년 2월에 경성에서 창간한 한글 월간 여성지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제2호는 1923년 3월 15일에 발행한 3월호이다. 인쇄인은 이의순(李義淳), 인쇄소는 동아인쇄소, 발행소는 부인계사, 정가 20전이다. 정기 발행일은 매월 15일, 경성의 본사는 대구와 평양, 그리고 수원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편집겸발행인인 이토 우사부로는 요코하마(橫濱) 출신으로, 조선에 건너온 때가 1905년 5월이다. 일찍이 한글을 습득하고 1910년 4월에 진남포신보사에 입사하여 조선문 부록 편집주임으로 일하다가 1912년 퇴사했다. 1915년 2월에 조선신문사, 1919년 3월에 경성일보사 입사를 거쳐, 1921년 4월부터는 매일신보사에서 조선어판 편집을 담당해 오다가 1924년 7월에 퇴사하였다. 1926년 4월에 조선사상통신사를 창립하고 일간 『조선사상통신』을 발행했다. 이 일간지는 1943년 그의 사망으로 폐간될 때까지 18년 동안, 조선 언론매체와 저술 가운데 주요 사항을 일역하여 일본인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식민통치에 도움이 되었으며, 그러한 공로로 두 차례나 총독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름을 ‘韓堂’이라고 개명할 만큼 조선과 조선어, 조선 언론에 애착이 있었고 재조 일인들에게 조선어 전문가로 널리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당시 발간되었던 조선인 발행 여성지들에 비하면 『부인계』의 문체와 장정, 표기방식, 사상 등은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스럽다. 당대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 가정 개량, 육아, 연애, 결혼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일본인 발행 주체도, 독자들도, 민족 경계 없이 한덩이로 ‘우리 조선, 우리 부인’ 식의 ‘우리’ 로 통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조선문 강습, 한문 강습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한편으로는 재조 일인들을 독자로 상정하고 있는 듯도 보인다. (해제: 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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