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타임스The Literary Times》는 1933년 2월 15일 처음 세상에 나왔다. 총독부의 탄압과 검열, 독자로부터의 괴리와 이반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활동이 위축되고 문단적 측면에서 《조선문단》 종간 이래 조선의 문단을 대표할 만한 문예지의 공백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작가들은 신문사가 발행했던 월간 종합지 《신동아》, 《중앙》, 《조광》과 《삼천리》 등의 문예면을 통해 작품 활동이 전개했지만 ‘전조선 범문단 문예지’에 대한 요구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이때,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문단 대립을 넘어 조선 전체를 포괄하는 범문단지로서 조선문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자 창간된 문예지가 《문학타임스》였다.
《문학타임스》의 편집겸 발행인은 이무영, 인쇄인은 이흡, 발행소는 문학타임스사(경성부 장사동 88)였고, 1부에 10전의 가격으로 총판매소인 경성각(경성 종로 2정목)에서 판매되었다. 매월 2회 발행을 목표로 했으나 2호가 1933년 3월 18일 발행되었으니 실제로는 월 1회 발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예지로는 흔하지 않은 타블로이드판형의 신문형태를 취하고 1호는 12면, 2호는 10면으로 구성되었다. 2호 발행 후 8개월간 휴간에 들어갔다가 1933년 10월 《조선문학》으로 제호를 바꾸고 지령을 계승해 다시 발행되었다. 《조선문학》을 1930년대의 조선 문단을 대표하는 유일한 문단지라 한다면, 《문학타임스》는 그 초기 모델이자 연속체라 할 수 있다.
프로문학의 정당성을 외치다
《문학타임스》의 필진은 카프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주축이 되고 동반자작가가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 창간호에 이갑기, 백철, 유치진, 김태준, 이흡, 홍효민, 안함광, 김광섭, 송순일, 이무영, 정진석, 최영수, 안석영, 서광제, 안재좌, 임병철, 윤석중, 현민, 최정희, 조벽암, 이기영이 작품을 실었고, 2호에는 이광수, 이기영, 주요한, 유진오, 이갑기, 최정희, 박화성, 모윤숙, 조희순, 김태선, 홍효민, 조벽암, 윤곤강, 이철종, 이종명, 송순일, 주요섭이 글을 게재했다. 1호와 2호에 연속으로 원고를 실었던 작가는 이기영, 이갑기, 최정희, 조벽암, 송순일 5명으로, 여기에 편집자인 이무영과 이흡까지 포함해 《문학타임스》의 성격을 가늠한다면 카프의 주도 아래 동반자작가를 아우르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창간호의 1면은 「창간사」 없이 당시 문단에 대한 프로문학계열의 비평으로 채워졌다. 이갑기는 「문예비평의 기준에 관한 사견-소위 프로비평의 고정화 문제」를, 백철은 「동반자작가문제」를 제기하며 프로문학이 직면한 두 가지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갑기는 프로비평이 고정된 형태와 일률적 내용으로 고정되었다는 비판에 대해, 정치경제학적 전제와 사회적 사상에 근거해 산출되는 비평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오히려 예술지상주의적 부르주아문학의 관념성을 비판했다. 다른 한편 백철은 그간 카프가 안일하게 대응해 온 동반자작가에 대해 좀 더 면밀한 전략을 구사해 수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백철은 《문학타임스》의 위치를 ‘진보적 자유주의’로 명명하고, 동반자작가로 유진오, 채만식, 유치진, 이무영, 안함광, 송계월, 조벽암, 박화성, 윤곤강, 최정희, 엄흥섭, 김병호, 김해강, 손초악, 이석훈, 이흡, 손풍산, 홍구, 안덕근 조용만 등을 지목하며 적극적인 포섭을 요구한다. 여기서 거론된 작가들은 실제 《문학타임스》의 주요 필진들로 참여한다. 창간호의 1면 기사를 통해 한편으로 프로문학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다른 한편으로 동반자작가를 위시한 범위의 확장을 꾀하는 《문학타임스》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2면의 「기계·생활·문학」에서 유치진은 기계문명과 문학의 반목을 지적하며 문학의 새로운 출발을 논해 계급문학보다는 모더니즘의 세계 인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어 김태준 「중국 신흥문단의 총아 장광자蔣光慈」, 홍효민 「문학의 당파성-동아 《문인좌담회》를 평함」, 안함광 「농민문학문제소고」, 김광섭 「극과 민중」, 이무영 「32년의 공포 3발」, 정진석 「조선 학생의 문학운동에 대하야」, 안재좌 「근대문명과 여류문학」, 최영수 「ᄶᅥ-나리즘 만화의 대세」 등 나머지 창간호의 기사들도 대체로 프로문학의 시각이 우세하지만 우호적 논의를 적극 끌어안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면에서 비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물론 이흡과 송순일, 조벽암의 시 「힘찬거름」, 「교회당」, 「2월의 상해」, 서광제의 시나리오 「가등과 걸인」, 임병철의 수필 「현대의 풍경」, 윤석중의 동요 「우체통과 거지」, 현민의 희곡 「위자료 3천원야」, 최정희와 이기영의 소설 「남포등」, 「변절자의 안해」 등의 작품을 싣는다. 하지만 비평과 작품의 비중이 거의 절반씩을 차지해 일반적 문예지의 창작 중심적 편집을 버리고 비평 중심의 구성에 기울었다. 지사모집을 알리며 ‘본지는 조선 최초-그리고 유일의 문학연구지요 조선의 예술운동을 일목요연하게 내다 볼 수 있는 전망대’라고 소개한 대목에서 애초부터 비평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로도 창간호는 문인들의 근황과 일화 「문단전망대」, 해외 사회주의 작가들 소개 「사회문학자열전」, 안석영의 「문단만화」, 「문단 소식」, 「문인 별명부」, 「문예일지」 등 가벼운 문학 관련 가십을 마련했고 학생작품, 공개장, 신인작품 등을 모집하는 사고를 실어 독자들의 흥미를 배가시켰다. 그럼에도 「창간사」와 함대훈의 「최근의 싸베트문단」, 김해강의 「나의 아리랑노래」, 모윤숙의 「쓰러진 예언자」 등 창간호에서만 4편의 원고가 누락되는데, 「창간사」가 누락되었다는 점이나 ‘이상 원고는 부득이 략(略)하오니 해량하시압’이라는 간략한 설명으로 보아 검열에 의한 삭제임을 추정할 수 있다.
‘본지는 순문학연구지’
2호의 지면 구성도 대체로 창간호와 같지만 1면 기사만은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창간호에서 「창간사」를 싣지 못한 대신 이갑기의 프로문학에 대한 비평을 내세운 것과 달리, 2호에서는 「순문학은 멸망되나?」를 화두로 이광수, 이기영, 주요한, 유진오, 이갑기의 서로 다른 의견을 게재했다. 단일한 의견의 일방적 현시 대신 다양한 의견의 조합을 택했다는 점에서 창간호와 달라진 모습이다. 게다가 프로문학이나 동반자작가뿐 아니라 이광수나 주요한처럼 민족주의계열로 간주되는 의견을 동시에 게재해 범문단적 지향을 드러낸 것도 주목된다.
그렇다고 프로문학의 헤게모니를 방기하지도 않았다. 1면의 설문기사에 이어 2면에는 이갑기의 「조선문단의 재음미」를 배치했다. 원래 기획은 ‘조선문단의 개황’이었으나 지면을 핑계삼아 1923년의 문단 상황을 평가했다. 이갑기는 먼저 독자대중의 문학 지식과 감상 능력이 현저히 성장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후, 혼란과 저회(底徊) 속 좌익 프로문단의 진전, 기성 민족주의 부르주아문단의 침체, 해외문학파의 소동으로 문단 상황을 정리했다. 분명한 프로비평가의 시선이다. 더불어 홍효민의 「신춘창작총평」, 윤곤강의 「전환기의 시적 파악-동반자 시 문제」까지 감안하면 프로문학을 중심으로 문단을 바라보는 관점은 2호에서도 여전히 명료하다. 흥미롭게도 이흡의 이름으로 ‘본사 이무영 군이 전선사에 관계하는 듯이 오해하는 분이 잇으나, 이군이 다만, 전선사 한인택군과의 정실관계로 속기(速記)을 해준 것 ᄲᅮᆫ이오니 해량하소서’라는 「사고」가 있어 「문학타임스」가 범문단지를 표방하면서도 프로문학의 중심성을 의심받았던 정황을 읽을 수 있다. 2호의 첫 기사가 ‘순문학’을 주제로 한 것이나, 독자들에게 ‘본지는 순문학연구지’라고 강조한 것도 그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창간호와 마찬가지로 비평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경향과 해외 문단의 동향, 가벼운 기사를 배치한 구성도 지속되었다. 앞의 비평들에 더해 조벽암의 「김안서의 기교적 도피」 등을 게재한 데 비해 시로는 김태선, 조벽암, 송순일의 「어데로 가는 사람들인가」, 「우울한 심정」, 「눈오는 밤」을, 번역소설로 주요섭의 「도롱 속의 숙녀」만을 실어 『문학타임스』의 비평 우위가 다시 확인된다. 여기에 해외의 동향을 보여주는 버나드 쇼의 「작가를 지원하는 문학청년에게」, 조희순의 「신즉물주의 희곡의 경향」, 이철종의 「미국시단」, 이종명과 박화성의 단상 「작가의 생활을 논함」, 「나의 처녀작」, 그리고 「맛나 보고 십흔 작가 최정희 박화성 모윤숙」, 문단일지, 문단소식, 문인별명록 등 비교적 가벼운 읽을거리를 제공한 것도 창간호와 동일하다. 비평과 창작, 문단 가십이 《문학타임스》의 지면을 3등분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3호가 발행되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비평의 구심력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지 ‘차호는 창작특집호’로 기획하겠다는 짧은 사고가 붙어 있어 지면 구성의 변화가 예고되었다. 하지만 결국 2호밖에 발행되지 못한 《문학타임스》는 프로문학 비평 중심으로 범문단지를 지향한 문예지로 남게 되었다.
《조선문학》 창간호는 《문학타임스》 3호
《문학타임스》는 2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동아일보》(1933년 5월 3일)와 《조선일보》(1933년 5월 5일)의 ‘원고 대부분이 허가되지 못하여 임시호를 준비’한다는 기사로 보아 검열이 휴간의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무영은 《문학타임스》의 꿈을 접지 않았다.
“「문타」가 잠을 잔 지 임의 여러 달. 그 동안에 ᄭᅮ어 온 ᄭᅮᆷ도 새록새록. 새로운 계획을 세고는 웃은 적도 여러 번이지만은 ᄯᅳᆺ갓치 못한 세상 일을 탄식한 한숨도 모아 노면 적지는 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몃 달 동안에 「문타」는 한시라도 ᄭᅮᆷ을 버려온 적이 업섯다. 그 ᄭᅮᆷ이 지금 현실되엿다. 이백 문(匁)을 못 넘는 이것을 만들기에 ᄭᅮᆷ도 차젓거니와 웃기도 설기도 한든 생각을 하면 우리의 무력(無力)이 무엇보다도 탄식된다. 「문타」 계연(繼然) 이번에 증항을 햇다.…(중략)… 이만한 지면을 창작에 제공한 예는 전에는 업섯다. 압흐로도 업슬 것이다. 매월 10편ᄭᅡ지의 창작을 실겠다. 신인의 것도 여러 가지 의미로 소개하겟다.”(이무영, 「편집전언」, 《조선문학》 1권 3호, 1933년 10월)
1933년 10월, 이무영은 《문학타임스》를 개제해 《조선문학》을 발행했다. 그래서 《조선문학》 창간호는 《문학타임스》의 지령을 계승해 ‘1권 3호’가 되었다. 말하자면 《조선문학》 창간호는 《문학타임스》 3호인 셈이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조선문학》의 창간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았다. 《조선문학》은 《문학타임스》에 비해 창작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신문형에서 잡지형으로 형태를 바꾸었지만, 《문학타임스》의 위상과 성격을 이어갔다. 1939년 7월 통권 20집으로 종간할 때까지 《문학타임스》-《조선문학》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문단지의 역할을 감당했다.(해제: 이경돈 _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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