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대중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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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삼천리 7권 5호
- 한문三千里 7卷 5號
- 기타三千里 六月號
- 발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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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인朴仁煥
- 인쇄인 주소京城 公平洞 55
- 편집 겸 발행인金東煥
- 편집 겸 발행인 주소京城 鍾路 2丁目 91
- 출판사
- 三千里社 삼천리사
- 발행지
- 京城 鍾路 2丁目 91
- 인쇄소
- 大東印刷所 대동인쇄소
- 인쇄지
- 京城 公平洞 55
- 발매소
- 大衆書屋 대중서옥
- 발매지
- 京城 慶雲洞
- 창간일
- 1929년 6월 12일
- 간행일
- 1935년 6월 1일
- 인쇄일
- 1935년 5월 13일
- 권호
- 7권 5호
- 간별
- 월간
-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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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수300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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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삼천리 기밀실(三千里 機密室) The Korean Black chamber
순종(純宗)의 어학우기(御學友記), (-세자궁(世子宮)의 춘계방사(春桂坊史)와 어울너-)
2백만 교도(二百萬 敎徒)의 통솔자(統率者) 손병희(孫秉熙)
이상재시대(李商在時代)의 10년(十年)
김찬시대(金燦時代)의 화요회(火曜會)
교우록(交友錄)
구라파(歐羅巴)를 진감(震撼)하는 독일(獨逸)의 폭탄선언(爆彈宣言)
조국(祖國) 직히는 대독일(大獨逸)의 애국군대(愛國軍隊)
조국(祖國)은 부흥(復興)한다(독일폐제(獨逸廢帝) 카이젤)
각 정당(各政黨)의 강령(綱領)
이성간(異性間)의 우정론(友情論) 아름다운 남매(男妹)의 기(記)
웅변(雄辯)과 만담(漫談)
단종대왕 장릉 참배기(端宗大王 莊陵 參拜記)
조선사회(朝鮮社會)와 장년교육론(壯年敎育論)
조선미통제종횡관(朝鮮米統制縱橫觀)(현행대책(現行對策)과 자치관리안(自治管理案))
근세희랍(近世希臘)의 부(父) 부에늬제로스의 재기(再起), 71세(七十一歲)의 혁명투사(革命鬪士)
세계정세초(世界情勢抄)
난정(亂政)의 왕(王) 연산군(燕山君), 제왕일대기(帝王一代記)기이(其二), -한양왕기(漢陽王氣)는 이때부터 쇠퇴(衰頹)-
조선여성의게, 구미여성(歐米女性)을 보고 반도여성(半島女性)에게
가희(歌姬)의 예술(藝術)·연애생활(戀愛生活)
탁발(托鉢)하는 3인 여승단(三人女僧團), 서울의 거리거리 도라다니는...
사화(史話)와 야담(野談)
서도미인(西道美人)과 영남미인(嶺南美人)
인공피임법론고(人工避妊法論考)
근일유감(近日有感)
영화(映畵)는 얼마나 리(利)를 보나
성숙기(成熟期)의 처녀(處女)와 월경(月經)
위대(偉大)한 작가(作家) 체-홉론(論)
영양(令孃)의 사(死)와 신문기자(新聞記者)
발전소이변기(發電所異變記)
서정시인(舒情詩人) 하이네와 사랑
영부인학력등급기(令夫人學力等級記)
부호(富豪)의 별장지대풍경(別莊地帶風景), 성북동 일대(城北洞一帶)
이광수(李光洙), 허영숙 양씨간(許英肅兩氏間) 연애서한집(戀愛書翰集)
미인박명애사(美人薄命哀史), 아아 불여귀(不如歸)러라 명우 이경설(名優李景雪)
음악시평(音樂時評)
구한국(舊韓國)의 해군(海軍)
동경문인묘(東京文人墓)
시객(詩客)과 풍류(風流)
도량(跳梁)하는 국제(國際) 스파이망(網)
시대(時代)가 요구(要求)하는 신성(神聖)한 의업(醫業), 누구나 배울 수 잇는 평양전의교(平壤電醫校)
각국 항구(各國港口)의 엽기행(獵奇行) 불국 마이새항(佛國馬耳塞港)
한토정치집(漢土情痴集)
춘원연구(春園硏究)(6)
문필생활기(文筆生活記)
광인일기(狂人日記)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