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대중
- 제호(잡지명)
-
- 한글삼천리 8권 2호
- 한문三千里 8卷 2號
- 기타三千里 二月號
- 출판사
- 三千里社 삼천리사
- 발행지
- 京城 경성
- 창간일
- 1929년 6월 12일
- 간행일
- 1936년
- 인쇄일
- 1936년
- 권호
- 8권 2호
- 간별
- 월간
- 형태
-
- 면수287, 12page
목차
삼천리기밀실(三千里機密室), The Korean Black Cham-ber
철환천하(轍環天下)한다면
대전환기(大轉換期)의 민족(民族)과 국가(國家)
도전(挑戰)하는 조선일보(朝鮮日報), 응전(應戰)하는 동아일보(東亞日報) _ 석병정기(石兵丁記)
창망(滄茫)한 북만주(北滿洲) _ 김경재(金璟載)
조만식씨(曺晩植氏)의 민력일기(民曆日記)
사고
우리의 제일주의(第一主義)는?
은행두취인물평(銀行頭取人物評) 동은두취(東銀頭取) 민대식씨(閔大植氏) _ 강상거사(江上居士)
단군(檀君)과 송진우씨설(宋鎭禹氏說)
민족흥망(民族興亡)의 자최를 차저
『구한국장교회(舊韓國將校會)』란 무엇하는 곳인가
십일월순익답림우정래시(十一月旬翌答林偶丁來詩)
경성종로상가대관(京城鐘路商街大觀) _ 경산학인(耕山學人)
구주(歐州)에서 활약(活躍)하는 인물(人物)들 –백의인재(白衣人材)들의 빗나는 자최를 차저- _ 용흥강인(龍興江人)
엇더한 영화(映畵)가 『컷트』당하나
방아도 흥(興)이로다 _ 윤극영(尹克榮)
우리 정조(情調) 흐르는 조선식(朝鮮式) 호텔 천향각(天香閣) 건축진척(建築進捗), 김옥교 여사(金玉橋 女史) 13도(十三道)를 돌아단겨
문화조선(文化朝鮮)의 호화판(豪華版), 한강반(漢江畔)에 신설(新設)되는 여자전문학교(女子專門學校), -내 일생(一生)에 마음먹은 바를 실현(實現)함에 오즉 깁뿔 뿐- _ 중앙보육학교장(中央保育學校長) 임영신(任永信)
배반(背叛)한 그 여자(女子), 그 남자(男子)
나는 몰나요 _ 윤극영(尹克榮)
망(望)향소곡(小曲) _ 윤극영(尹克榮)
(만문(漫文)) 신구여성 좌담회 풍경(新舊女性 座談會 風景) _ 신불출(申不出)
화형여우(花形女優) 문예봉양(文藝峯孃)의 대답(對答)은 이러함니다
통속관상강좌(通俗觀相講座), 엇던 사람이 돈 모흐고 사나 _ 배상철(裵相哲)
신춘(新春)에는 엇든 노래 유행(流行)할가
신혼여행 배종기(新婚旅行 陪從記) _ 이서구(李瑞求)
레코-드와 박화성 여사(朴花城 女士)
문인(文人)과 「아스파라까스」
육십원(六十圓) 일흔 문예봉(文藝峯)
거리의 여학교(女學校)를 차저, 섬섬옥수(纖纖玉手)로 짜내는 방직여학교(紡織女學校)를 차저
혼선(混線) 우(又) 혼선(混線)의 국제(國際) 스파이전(戰)
종려수(棕櫚樹) 욱어진 곳(강남(江南) 보내는 편지) _ 여산(如山)
중조가담(重調歌談) 「영월단장곡(寧越斷腸曲)」 _ 해울헌 현철(解鬱軒 玄哲) 창연(唱演)
이수탁씨(李洙倬氏)는 무얼 하려는고, 백만원(百萬圓) 돈차지면?
구속정월행사(舊俗正月行事) _ 신림(申琳)
문호(文豪)가 그린 여성(女姓)
아버지원수 갑흐러 12년(十二年), 꼿가튼 여성(女姓)의 눈물겨운 애사(哀史), 천진손전방사살사건(天津孫傳芳射殺事件)
소설강좌(小說講座)
시가강좌(詩歌講座)
해외문호강좌(海外文豪講座) _ 양백화(梁白華)
경성 각학교 입학안내(京城各學校入學案內), 금춘 경성 중등이상 제학교 입학지침(今春京城中等以上諸學校入學指針)
영어(英語) 우(又)는 에쓰어(語)로 번역(飜譯)하야 해외(海外)에 보내고 십흔 우리 작품(作品)
여류작가 좌담회(女流作家 座談會)
금년(今年)에 하고 십흔 문학적(文學的) 활동기(活動記)
남장미(男壯美) _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새해를 마즈며 _ 적구(赤駒)
수(獸) _ 유치진(柳致眞)
실직(失職)(승전(承前)) _ 염상섭(廉想涉)
장혁주씨(張赫宙氏) 추천(推薦), 신인작품(新人作品), 삼송정(三松亭)에 생긴일(속(續)) _ 박북민(朴北民)
검둥의 비애(悲哀)(6) _ 스토우 원작(原作) 이광수(李光洙) 초역(抄譯)
웃는 자유첩(自由帖)
삼천리(三千里) 에쓰페란토란(欄)
감사(感謝)와 사죄(謝罪)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