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교육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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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태극학보 5호
- 한문太極學報 5號
- 발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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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인김지간
- 인쇄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 편집 겸 발행인장응진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 출판사
- 太極學會 태극학회
- 발행지
- 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 인쇄소
- 敎文館印刷所 교문관인쇄소
- 인쇄지
- 東京市 京橋區 銀座 4丁目 1番地
- 창간일
- 1906년 8월 24일
- 간행일
- 1906년 12월 31일
- 인쇄일
- 1906년
- 통권
- 5호
- 간별
- 월간
- 형태
-
- 면수54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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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고학회설(이)(告學會說(二)) _ 유학생 감독 한치유(留學生監督 韓致愈)
공하 태극학회 창립(기서)(恭賀太極學會創立(寄書)) _ 김보현(金普鉉)
과학론(科學論) _ 편집인 장응진(編輯人 張膺震)
조세론(租稅論) _ 최석하(崔錫夏)
거교설(去驕說) _김정식씨 연설(金貞植氏 演說) 김낙영 필기(金洛泳 筆記)
애국의 의무(愛國의 義務) _ 이윤주(李潤柱)
조선혼(朝鮮魂) _ 최석하(崔錫夏)
한국 국민의 생활을 론(韓國 國民의 生活을 論) _ 채규병(蔡奎丙)
역사담 제3회(歷史譚 第三回)
동물 사회적의 생활(動物社會的의 生活) _ 한상기(韓相琦)
경찰지연혁(警察之沿革) _ 장계택(張啓澤)
농자 백업의 근본(전호속)(農者 百業의 根本(前號續)) _ 하정생 김만규(荷汀生 金晩圭)
위생문답(衛生問答) _ 박상락 역(朴相洛 譯)
조림상입지의 관계(造林上立地의 關係) _ 김진초(金鎭初)
송화와 풍(松花와 風) _ 홍정구 역(洪正求 譯)
고별사(告別辭) _ 김창대(金昌臺)
세모소감(歲暮所感) _ 김지간(金志侃)
축사삼조(기서)祝詞三調(寄書)) _ 이승현(李承鉉)
찬가(기서)(贊歌(寄書)) _ 이규형(李奎瀅)
사고인(思故人) _ 재강산 지성연(在岡山 池成沇)
오인이 일생의 입지할 원론(吾人이 一生의 立志할 原論) _ 유목(劉睦)
인생의 대죄악은 자유를 기에 재(人生의 大罪惡은 自由를 棄에 在) _ 이진하(李珍河)
수감만필(隨感謾筆) _ 김재문(金載汶)
체육을 권고(體育을 勸告) _ 최창렬(崔昌烈)
세계잡관(世界雜觀) _ 윤정하 편(尹定夏 編)
잡보(雜報)
해제
태극학회는 1905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단체이다. 처음에는 후배 유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출판을 통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국내의 계몽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09년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통합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1906년 8월 조직이 정비되어 학회지인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했다. 『태극학보』는 이윤주(李潤柱), 문일평(文一平) 등의 의연금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회원의 의연금과 학보 판매금, 유지의 찬성금(贊成金)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7월에는 175명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의연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편집에는 김낙영·김홍량(金鴻亮)·김지간 등이 관여했다. 1907년 3월 학보편찬원 8인을 신설해 학보 발간에 주력했다.
『태극학보』는 1906년 8월 24일 제1호를 창간한 이래 매년 8월을 제외하고 1908년 12월까지 27호를 발간했다. 학보의 크기는 A5판, 분량은 52∼72면 정도였다. 처음에는 1,000부를 발행했으나 호응이 커서 2,000부까지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극학보』는 일본, 서울 및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사(共立申報社)를 통해 미주에도 배포되었다.
『태극학보』는 대개 논단·강단·학원(學園)·문예·잡보·기서(寄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논단에는 국내 현실과 애국적인 논설을, 강단과 학원에는 계몽적인 학문의 소개를, 문예에는 문학작품을, 잡보에는 유학생의 활동과 국내외의 정세를 실었다.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한 만큼 계몽적인 학술내용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논설류도 많았다. 그러나 발행 장소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사는 일체 싣지 못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