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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 교육
제호(잡지명)
  • 한글태극학보 7호
  • 한문太極學報 7號
발행자
  • 인쇄인김지간
  • 인쇄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 편집 겸 발행인장응진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출판사
太極學會 태극학회
발행지
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인쇄소
敎文館印刷所 교문관인쇄소
인쇄지
東京市 京橋區 銀座 4丁目 1番地
창간일
1906년 8월 24일
간행일
1907년 3월 13일
인쇄일
1907년
통권
7호
간별
월간
형태
  • 면수60page
가격

표지화 (삽화,컷)

목차

고학회설(사)(告學會說(四)) _ 유학생 감독 한치유(留學生監督 韓致愈)
사회아를 론(社會我를 論) _ 편집인 장응진(編輯人 張膺震)
헌신적 정신(獻身的 精神) _ 녀사 윤정원(윤뎡원)(女史 尹貞媛)
한국이 갈망 인물(韓國이 渴望 人物) _ 최석하(崔錫夏)
이십세기의 생활(二十世紀의 生活) _ 전영작(全永爵)
국문 편리 급 한문 폐해의 설(전호속)(國文便利 及 漢文弊害의 說(前號續)) _ 강전(姜荃)
삼국 종교약론(三國 宗敎略論) _ 선사 일우 김태은(禪師 一愚 金太垠)
제2장 헌법(속)(第二章 憲法(續)) _ 곽한탁(郭漢倬)
역사담 제5회(歷史譚 第五回) _ 박용희(朴容喜)
외국 지리(속)(外國地理 續) _ 한명수(韓明洙)
논도량형(기서)(論度量衡(寄書)) _ 양재창(粱在昶)
경찰정탐(警察偵探) _ 장계택(張啓澤)
광물-수정 급 석영(鑛物-水晶 及 石英) _ 박상락 역(朴相洛 譯)
양돈설(養豚說) _ 김진초(金鎭初)
북창예어(北窓囈語) _ 대몽생 최남선(大夢生 崔南善)
파면종(破眠鐘) _ 신상호(申相鎬)
태극학회 찬축가(太極學會贊祝歌) _ 팔십옹 채동제(八十翁 蔡東濟)
제석만필(除夕漫筆) _ 이승현(李承鉉)
동유도중(東遊途中) _ 위재 이규영(爲齋 李奎濚)
유감(有感) _ 정석내(鄭錫迺)
다정다한(사실소설)(전호속)(多情多恨(寫實小說)(前號續)) _ 백악춘사(白岳春史)
잡록(雜錄)

해제

태극학회는 1905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단체이다. 처음에는 후배 유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출판을 통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국내의 계몽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09년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통합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1906년 8월 조직이 정비되어 학회지인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했다. 『태극학보』는 이윤주(李潤柱), 문일평(文一平) 등의 의연금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회원의 의연금과 학보 판매금, 유지의 찬성금(贊成金)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7월에는 175명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의연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편집에는 김낙영·김홍량(金鴻亮)·김지간 등이 관여했다. 1907년 3월 학보편찬원 8인을 신설해 학보 발간에 주력했다.
『태극학보』는 1906년 8월 24일 제1호를 창간한 이래 매년 8월을 제외하고 1908년 12월까지 27호를 발간했다. 학보의 크기는 A5판, 분량은 52∼72면 정도였다. 처음에는 1,000부를 발행했으나 호응이 커서 2,000부까지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극학보』는 일본, 서울 및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사(共立申報社)를 통해 미주에도 배포되었다.
『태극학보』는 대개 논단·강단·학원(學園)·문예·잡보·기서(寄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논단에는 국내 현실과 애국적인 논설을, 강단과 학원에는 계몽적인 학문의 소개를, 문예에는 문학작품을, 잡보에는 유학생의 활동과 국내외의 정세를 실었다.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한 만큼 계몽적인 학술내용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논설류도 많았다. 그러나 발행 장소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사는 일체 싣지 못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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