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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 교육
제호(잡지명)
  • 한글태극학보 8호
  • 한문太極學報 8號
발행자
  • 인쇄인김지간
  • 인쇄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 편집 겸 발행인장응진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출판사
太極學會 태극학회
발행지
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인쇄소
敎文館印刷所 교문관인쇄소
인쇄지
東京市 京橋區 銀座 4丁目 1番地
창간일
1906년 8월 24일
간행일
1907년 4월 5일
인쇄일
1907년
통권
8호
간별
월간
가격

표지화 (삽화,컷)

목차

고학회설(오)(告學會說(五)) _ 유학생 감독 한치유(留學生監督 韓致愈)
무비론(기서)(武備論(寄書)) _ 구자욱(具滋旭)
자주적 자아(自主的 自我) _ 오석유(吳錫裕)
인의 강약과 국의 성쇠가 위여불위에 재(人의 强弱과 國의 盛衰가 爲與不爲에 在) _ 이규영(李奎濚)
입법 사법 급 행정의 구별과 기 의의(立法 司法 及 行政의 區別과 其 意義) _ 전영작(全永爵)
유쾌 처세법(愉快 處世法) _ 이훈영(李勳榮)
비스마-­ㄱ(비사맥)전 부(비스마-­ㄱ(比斯麥)傳 附) _ 박용희(朴容喜)
지나 지리(전호속)(支那地理 前號續) _ 한명수(韓明洙)
위생문답(衛生問答) _ 박상락 역(朴相洛 譯)
춘몽(春夢) _ 백악춘사(白岳春史)
추조면암최선생(追弔勉庵崔先生) _ 회원 이창균(會員 李昌均)
어업소일가(漁業消日歌) _ 최창렬(崔昌烈)
곽색과 구인을 견라(郭索과 蚯蚓을 見라) _ 이원붕(李元鵬)
해저여행(기담)(海底旅行(奇譚)) _ 법국인(法國人) 슐스펜씨 원저(슐스펜氏 原著) 박용희 역(朴容喜 譯)
경찰정탐(전호속)(警察偵探(前號續)) _ 장계택(張啓澤)
북한 농맹 양인이 자평(北韓 聾盲 兩人이 自評) _ 소소생 소암 기저(笑笑生 小菴 記著)
적최면암 선생(吊崔勉庵 先生)
잡보(雜報)

해제

태극학회는 1905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단체이다. 처음에는 후배 유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출판을 통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국내의 계몽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09년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통합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1906년 8월 조직이 정비되어 학회지인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했다. 『태극학보』는 이윤주(李潤柱), 문일평(文一平) 등의 의연금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회원의 의연금과 학보 판매금, 유지의 찬성금(贊成金)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7월에는 175명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의연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편집에는 김낙영·김홍량(金鴻亮)·김지간 등이 관여했다. 1907년 3월 학보편찬원 8인을 신설해 학보 발간에 주력했다.
『태극학보』는 1906년 8월 24일 제1호를 창간한 이래 매년 8월을 제외하고 1908년 12월까지 27호를 발간했다. 학보의 크기는 A5판, 분량은 52∼72면 정도였다. 처음에는 1,000부를 발행했으나 호응이 커서 2,000부까지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극학보』는 일본, 서울 및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사(共立申報社)를 통해 미주에도 배포되었다.
『태극학보』는 대개 논단·강단·학원(學園)·문예·잡보·기서(寄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논단에는 국내 현실과 애국적인 논설을, 강단과 학원에는 계몽적인 학문의 소개를, 문예에는 문학작품을, 잡보에는 유학생의 활동과 국내외의 정세를 실었다.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한 만큼 계몽적인 학술내용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논설류도 많았다. 그러나 발행 장소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사는 일체 싣지 못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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