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교육
- 제호(잡지명)
-
- 한글태극학보 9호
- 한문太極學報 9號
- 발행자
-
- 인쇄인김지간
- 인쇄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 편집 겸 발행인장응진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 출판사
- 太極學會 태극학회
- 발행지
- 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 인쇄소
- 敎文館印刷所 교문관인쇄소
- 인쇄지
- 東京市 京橋區 銀座 4丁目 1番地
- 창간일
- 1906년 8월 24일
- 간행일
- 1907년 5월 3일
- 인쇄일
- 1907년 4월 27일
- 통권
- 9호
- 간별
- 월간
- 형태
-
- 면수60page
- 가격
-
목차
심리학상으로 관찰 언어(心理學上으로 觀察 言語) _ 장응진(張膺震)
금주라 보채세(기서)(禁酒라 報債세(寄書)) _ 안헌(安憲)
자아의 자활의무(自我의 自活義務) _ 오석유(吳錫裕)
발흥시대에 적극적(勃興時代에 積極的) _ 양대경(梁大卿)
인격수양과 의지공고(人格修養과 意志鞏固) _ 곽한칠(郭漢七)
불학무식 집안의 가 홈을 구경(긔셔) _ 회원 리원붕 모친 백씨
평화회의에 대 여의 감념(平和會義에 對 余의 感念) _ 우양생 최석하(友洋生 崔錫夏)
인족의 귀보 정신과 지기라(기서)(人族의 貴寶 精神과 志氣라(寄書)) _ 당악석릉생(唐岳石菱生)
헌법 속(憲法 續) _ 곽한탁(郭漢倬)
역사담 제7회 비사맥전부 속(歷史譚 第七回 比斯麥傳附 續) _ 박용희(朴容喜)
지진설(地震說) _ 박상락 역(朴相洛 譯)
동물의 지정(動物의 智情) _ 김낙영(金洛泳)
금일(今日) _ 우고생(友古生)
강호십오경 부광고(江戶十五景 附廣告) _ 발견인 이승근(發見人 李承瑾)
한성중춘재도동경(漢城仲春再渡東京) _ 일우 김태은(一愚 金太垠)
농원양돈설(農園養豚說) _ 김진초(金鎭初)
일본 동경경시청 조직(日本 東京警視廳 組織) _ 장계택(張啓澤)
해저여행 기담 제2회(海底旅行 奇譚 第二回) _ 법국(法國) 슐스펜씨 원저(슐스펜氏 原著) 박용희(朴容喜)
세계 진문(世界珍聞)
기서(寄書)
조도전대학 사건 전말(早稻田大學事件 顚末)
잡보(雜報)
해제
태극학회는 1905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단체이다. 처음에는 후배 유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출판을 통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국내의 계몽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09년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통합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1906년 8월 조직이 정비되어 학회지인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했다. 『태극학보』는 이윤주(李潤柱), 문일평(文一平) 등의 의연금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회원의 의연금과 학보 판매금, 유지의 찬성금(贊成金)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7월에는 175명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의연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편집에는 김낙영·김홍량(金鴻亮)·김지간 등이 관여했다. 1907년 3월 학보편찬원 8인을 신설해 학보 발간에 주력했다.
『태극학보』는 1906년 8월 24일 제1호를 창간한 이래 매년 8월을 제외하고 1908년 12월까지 27호를 발간했다. 학보의 크기는 A5판, 분량은 52∼72면 정도였다. 처음에는 1,000부를 발행했으나 호응이 커서 2,000부까지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극학보』는 일본, 서울 및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사(共立申報社)를 통해 미주에도 배포되었다.
『태극학보』는 대개 논단·강단·학원(學園)·문예·잡보·기서(寄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논단에는 국내 현실과 애국적인 논설을, 강단과 학원에는 계몽적인 학문의 소개를, 문예에는 문학작품을, 잡보에는 유학생의 활동과 국내외의 정세를 실었다.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한 만큼 계몽적인 학술내용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논설류도 많았다. 그러나 발행 장소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사는 일체 싣지 못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