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교육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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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태극학보 11호
- 한문太極學報 11號
- 발행자
-
- 인쇄인김지간
- 인쇄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 편집 겸 발행인장응진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太極學會 內
- 출판사
- 太極學會 태극학회
- 발행지
- 東京市 本鄕區 元町 2丁目 66番地
- 인쇄소
- 敎文館印刷所 교문관인쇄소
- 인쇄지
- 東京市 京橋區 銀座 4丁目 1番地
- 창간일
- 1906년 8월 24일
- 간행일
- 1907년 7월 5일
- 인쇄일
- 1907년 6월 27일
- 통권
- 11호
- 간별
- 월간
- 형태
-
- 면수62page
- 가격
-
목차
희망의 서광(希望의 曙光) _ 백악자 장응진(白岳子 張膺震)
정신적 교육의 필요(精神的 敎育의 必要) _ 석소 이동초(石蘇 李東初)
동서 양양인의 수학사상(승전)(東西 兩洋人의 數學思想(承前) _ 초해생 김낙영 역술(椒海生 金洛泳 譯述)
진보의 삼계급(進步의 三階級) _ 문일평(文一平)
실업계의 일효시(實業界의 一嚆矢) _ 정석내(鄭錫迺)
역사담 제9회(歷史譚 第九回) _ 박용희(朴容喜)
소년백과총서(少年百科叢書) _ 초해생(椒海生)
수목의 니야기(樹木의 니야기) _ 박상락(朴相洛)
심장운동과 혈액순환의 요론(속)(心臟運動과 血液循環의 要論(續)) _ 이규영(李奎濚)
아농계의 전도(我農界의 前途) _ 김진초(金鎭初)
집안에셔 어린 아 기라 법 _ 우경명(禹敬命)
수(水)의 니야기 _ NYK生
학창여담(일)(學窓餘談(一) _ 오석유(吳錫裕)
조하우작(肇夏偶作)_ 석소 이동초(石蘇 李東初)
조하교외행(肇夏郊外行)_ 석소 이동초(石蘇 李東初)
우음(偶吟) _ 소산 송욱현(小山 宋旭鉉)
해저여행 기담 제4회(海底旅行奇譚 第四回) _ 박용희(朴容喜)
세계담총(世界談叢) _ 몽접(夢蝶)
대외백의 아국첨채당업담(大隈伯의 我國甛菜糖業談)
잡보(雜報)
해제
태극학회는 1905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단체이다. 처음에는 후배 유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출판을 통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국내의 계몽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09년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통합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1906년 8월 조직이 정비되어 학회지인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했다. 『태극학보』는 이윤주(李潤柱), 문일평(文一平) 등의 의연금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회원의 의연금과 학보 판매금, 유지의 찬성금(贊成金)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7월에는 175명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의연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편집에는 김낙영·김홍량(金鴻亮)·김지간 등이 관여했다. 1907년 3월 학보편찬원 8인을 신설해 학보 발간에 주력했다.
『태극학보』는 1906년 8월 24일 제1호를 창간한 이래 매년 8월을 제외하고 1908년 12월까지 27호를 발간했다. 학보의 크기는 A5판, 분량은 52∼72면 정도였다. 처음에는 1,000부를 발행했으나 호응이 커서 2,000부까지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극학보』는 일본, 서울 및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사(共立申報社)를 통해 미주에도 배포되었다.
『태극학보』는 대개 논단·강단·학원(學園)·문예·잡보·기서(寄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논단에는 국내 현실과 애국적인 논설을, 강단과 학원에는 계몽적인 학문의 소개를, 문예에는 문학작품을, 잡보에는 유학생의 활동과 국내외의 정세를 실었다.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한 만큼 계몽적인 학술내용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논설류도 많았다. 그러나 발행 장소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사는 일체 싣지 못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