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교육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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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태극학보 14호
- 한문太極學報 14號
- 발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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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인김지간
- 인쇄인 주소東京 本鄕區 眞砂町 38番地
- 편집 겸 발행인장응진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東京 本鄕區 眞砂町 38番地
- 출판사
- 太極學會 태극학회
- 발행지
- 東京 小石川區 上富坂町 30番地
- 인쇄소
- 明文舍
- 인쇄지
- 東京 牛込區 辨天町 26番地
- 창간일
- 1906년 8월 24일
- 간행일
- 1907년 10월 24일
- 인쇄일
- 1907년 10월 20일
- 통권
- 14호
- 간별
- 월간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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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노동과 인생(勞働과 人生) _ 강도량천 선생의 절필(綱島梁川先生의 絶筆)
분투생활지준비(奮鬪生活之準備) _ 석소 이동초(石蘇 李東初)
학생의 규칙생활(學生의 規則生活) _ 연구생(硏究生)
신시대의 사조(新時代의 思潮) _ 일세생(一歲生)
교수와 교과에 대야(전호속)(敎授와 敎科에 對야(前號續)) _ 장응진(張膺震)
역사담 제12회(歷史譚 第十二回) _ 박용희(朴容喜)
동몽물리학강담(사)(童蒙物理學講談(四)) _ 초해생 김낙영(椒海生 金洛泳)
지문학강담(이)(地文學講談(二) _ 연구생(硏究生)
이과강담(이)-소학교원 참고(理科講談(二)-小學敎員 參考) _ 호연자 역(浩然子 譯)
천문학강담(일)(天文學講談(一)) _ 앙천자(仰天子)
양계설(전호속)(養鷄說(前號續)) _ 김진초(金鎭初)
한(恨) _ 초해생(椒海生)
해저여행 기담(海底旅行奇譚) _ 자락(自樂)
잡보(雜報)
해제
태극학회는 1905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단체이다. 처음에는 후배 유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출판을 통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국내의 계몽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09년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통합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1906년 8월 조직이 정비되어 학회지인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했다. 『태극학보』는 이윤주(李潤柱), 문일평(文一平) 등의 의연금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회원의 의연금과 학보 판매금, 유지의 찬성금(贊成金)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7월에는 175명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의연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편집에는 김낙영·김홍량(金鴻亮)·김지간 등이 관여했다. 1907년 3월 학보편찬원 8인을 신설해 학보 발간에 주력했다.
『태극학보』는 1906년 8월 24일 제1호를 창간한 이래 매년 8월을 제외하고 1908년 12월까지 27호를 발간했다. 학보의 크기는 A5판, 분량은 52∼72면 정도였다. 처음에는 1,000부를 발행했으나 호응이 커서 2,000부까지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극학보』는 일본, 서울 및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사(共立申報社)를 통해 미주에도 배포되었다.
『태극학보』는 대개 논단·강단·학원(學園)·문예·잡보·기서(寄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논단에는 국내 현실과 애국적인 논설을, 강단과 학원에는 계몽적인 학문의 소개를, 문예에는 문학작품을, 잡보에는 유학생의 활동과 국내외의 정세를 실었다.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한 만큼 계몽적인 학술내용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논설류도 많았다. 그러나 발행 장소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사는 일체 싣지 못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