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교육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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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태극학보 16호
- 한문太極學報 16號
- 발행자
-
- 인쇄인김지간
- 인쇄인 주소東京 小石川區 堅町 45番地
- 편집 겸 발행인장응진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東京 小石川區 堅町 45番地
- 출판사
- 太極學會 태극학회
- 발행지
- 東京 小石川區 中富坂町 19番地
- 인쇄소
- 明文舍
- 인쇄지
- 東京 牛込區 辨天町 26番地
- 창간일
- 1906년 8월 24일
- 간행일
- 1907년 12월 24일
- 인쇄일
- 1907년 12월 20일
- 통권
- 16호
- 간별
- 월간
-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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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수64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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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문명의 정신을 론(文明의 精神을 論) _ 정제원(鄭濟原)
청년의 역사연구(靑年의 歷史硏究) _ 김지간(金志侃)
국가와 교육의 관계(國家와 敎育의 關係) _ 김진초(金鎭初)
소년국민의 양성(少年國民의 養成) _ 석소 이동초(石蘇 李東初)
농업진흥책(農業振興策) _ 경세생(畊世生)
세계문명사(世界文明史) _ 김낙영 역술(金洛泳 譯述)
가정교육법(家庭敎育法) _ 김수철 역술(金壽哲 譯述)
역사담 제14회 Der Historiker(歷史譚 第十四回 Der Historiker) _ 박용희(朴容喜)
음향의 이야기(音響의 니야기) _ 연구생(硏究生)
천문학강담(天文學講談) _ 앙천자(仰天子)
이과강담-소학교사 참고(理科講談-小學敎師 參考) _ 호연자 역(浩然子 譯)
접목법(속)(接木法(續)) _ 박상락 역(朴相洛 譯)
수학의 유희(數學의 遊戱) _ 박유병(朴有秉)
마굴(魔窟) _ 백악춘사(白岳春史)
천국과 인세의 귀일(天國과 人世의 歸一) _ 현현생(玄玄生)
찬태극학보(贊太極學報) _ 농와 정제원(農窩 鄭濟原)
찬태극학보(賛太極學報) _ 정상묵(鄭尙黙)
추도 표진모 구우(追悼表振模舊雨) _ 애우생 김영기(愛宇生 金永基)
한별팔절(恨別八絶) _추관생 고원훈(秋觀生 高元勳)
해저여행 기담(海底旅行奇譚) _ 자락당(自樂堂)
잡보(雜報)
회사요록과 회원 거취(會事要錄과 會員居就)
신입 회원(新入會員)
태극학보 의연인씨명(太極學報 義捐人氏名) 용의지회원 추후 의연)(龍義支會員 追後 義捐)
황태자 전하 동경 어착(皇太子殿下 東京御着)
해제
태극학회는 1905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단체이다. 처음에는 후배 유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출판을 통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국내의 계몽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09년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통합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1906년 8월 조직이 정비되어 학회지인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했다. 『태극학보』는 이윤주(李潤柱), 문일평(文一平) 등의 의연금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회원의 의연금과 학보 판매금, 유지의 찬성금(贊成金)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7월에는 175명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의연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편집에는 김낙영·김홍량(金鴻亮)·김지간 등이 관여했다. 1907년 3월 학보편찬원 8인을 신설해 학보 발간에 주력했다.
『태극학보』는 1906년 8월 24일 제1호를 창간한 이래 매년 8월을 제외하고 1908년 12월까지 27호를 발간했다. 학보의 크기는 A5판, 분량은 52∼72면 정도였다. 처음에는 1,000부를 발행했으나 호응이 커서 2,000부까지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극학보』는 일본, 서울 및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사(共立申報社)를 통해 미주에도 배포되었다.
『태극학보』는 대개 논단·강단·학원(學園)·문예·잡보·기서(寄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논단에는 국내 현실과 애국적인 논설을, 강단과 학원에는 계몽적인 학문의 소개를, 문예에는 문학작품을, 잡보에는 유학생의 활동과 국내외의 정세를 실었다.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한 만큼 계몽적인 학술내용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논설류도 많았다. 그러나 발행 장소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사는 일체 싣지 못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