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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 교육
제호(잡지명)
  • 한글태극학보 17호
  • 한문太極學報 17號
발행자
  • 인쇄인김지간
  • 인쇄인 주소東京 小石川區 堅町 45番地
  • 편집 겸 발행인장응진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東京 小石川區 堅町 45番地
출판사
太極學會 태극학회
발행지
東京 小石川區 中富坂町 19番地
인쇄소
明文舍
인쇄지
東京 牛込區 辨天町 26番地
창간일
1906년 8월 24일
간행일
1908년 1월 24일
인쇄일
1908년 1월 20일
통권
17호
간별
월간
형태
  • 면수62page
가격

표지화 (삽화,컷)

목차

문명의 성질 유차와 문명의 유입 물오(文明의 性質有差와 文明의 誘入勿誤) _ 석소 이동초(石蘇 李東初)
소학교원의 천직(小學敎員의 天職) _ 호연자(浩然子)
인생이라 동물(人生이라 動物) _ 김재문(金載汶)
학문의 목적(學問의 目的) _ 연구생(硏究生)
세계문명사 비문명적 인류(世界文明史 非文明的 人類) _ 김낙영 역술(金洛泳 譯述)
가정교육법(家庭敎育法) _ 김수철 역술(金壽哲 譯述)
역사담 제15회 Der Historker(歷史譚 第十五回 Der Historker)
농업의 보호와 개량에 관 국가의 시설(農業의 保護와 改良에 關 國家의 施設) _ 경세생(耕世生)
자석(속의 소위 지남철)의 니야기(磁石(俗의 所謂 指南鐵))의 니야기 _ 연구생(硏究生)
접목법(전호속)(接木法(前號續)) _ 박상락 역(朴相洛 譯)
양계설(養鷄說) _ 김진초(金鎭初)
미국에 유학 우인의게(美國에 留學 友人의게) _ 초해생(椒海生)
한양술회 오수(漢陽述懷 五首) _ 동우자 정전내(東憂子 鄭錢迺)
관국기(觀菊記) _ 유일한한자(惟一閒閒子)
객중세모(客中歲暮) _ 부평생(浮萍生)
신년영(新年詠) _ 석소 이동초(石蘇 李東初)
신년축사(新年祝詞) _ 이규영(李奎濚)
잡록(雜錄)
회사요록(會事要錄)
영유군지회 신입 회원(永柔郡支會 新入會員)
태극학보 의연인 씨명(太極學報義捐人氏名)
공정태극학회(恭呈太極學會)
기서(寄書) _ 평양 노인규(平壤 盧麟奎)

해제

태극학회는 1905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단체이다. 처음에는 후배 유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출판을 통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국내의 계몽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09년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통합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1906년 8월 조직이 정비되어 학회지인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했다. 『태극학보』는 이윤주(李潤柱), 문일평(文一平) 등의 의연금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회원의 의연금과 학보 판매금, 유지의 찬성금(贊成金)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7월에는 175명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의연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편집에는 김낙영·김홍량(金鴻亮)·김지간 등이 관여했다. 1907년 3월 학보편찬원 8인을 신설해 학보 발간에 주력했다.
『태극학보』는 1906년 8월 24일 제1호를 창간한 이래 매년 8월을 제외하고 1908년 12월까지 27호를 발간했다. 학보의 크기는 A5판, 분량은 52∼72면 정도였다. 처음에는 1,000부를 발행했으나 호응이 커서 2,000부까지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극학보』는 일본, 서울 및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사(共立申報社)를 통해 미주에도 배포되었다.
『태극학보』는 대개 논단·강단·학원(學園)·문예·잡보·기서(寄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논단에는 국내 현실과 애국적인 논설을, 강단과 학원에는 계몽적인 학문의 소개를, 문예에는 문학작품을, 잡보에는 유학생의 활동과 국내외의 정세를 실었다.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한 만큼 계몽적인 학술내용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논설류도 많았다. 그러나 발행 장소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사는 일체 싣지 못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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