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교육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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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태극학보 19호
- 한문太極學報 19號
- 발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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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인김지간
- 인쇄인 주소東京 小石川區 堅町 45番地
- 편집 겸 발행인김락영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東京市 小石川區 中富坂町 19番地
- 출판사
- 太極學會 태극학회
- 발행지
- 東京 小石川區 中富坂町 19番地
- 인쇄소
- 明文舍
- 인쇄지
- 東京 牛込區 辨天町 26番地
- 창간일
- 1906년 8월 24일
- 간행일
- 1908년 3월 24일
- 인쇄일
- 1908년 3월 20일
- 통권
- 19호
- 간별
- 월간
-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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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수60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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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청년의 득의(靑年의 得意) _ 초해생(椒海生)
교육계의 사조(敎育界의 思潮) _ 호연자(浩然子)
동양사의 연구(東洋史의 硏究) _ 만천생(挽天生)
실업과 공덕(實業과 公德) _ 리단산인(莅丹山人)
세계문명사(世界文明史)(전호속) _ 김낙영 역술(金洛泳 譯述)
가정교육법(전호속)(家庭敎育法(前號續)) _ 김수철 역술(金壽哲 譯述)
역사담 제17회(歷史譚 第十七回) _ 숭고생(崇古生)
교사 무계급지존비고 기 책임은 무경중지등차(敎師 無階級之尊卑고 其 責任은 無輕重之等差) _ 이규철(李奎澈)
청년의 심리학 응용(靑年의 心理學 應用) _ 연구생(硏究生)
천연두 예방법(天然痘 豫防法) _ 김영재(金英哉)
해의 담(海의 談) _ 학해주인(學海主人)
낙타담(駱駝譚) _ 노농 박상락(老農 朴相洛)
화학초보(化學初步) _ 박정의(朴廷義)
사회와 가정(社會와 家庭) _ 오석유(吳錫裕)
사제의 언론(師弟의 言論) _ 은우생(隱憂生)
제석(除夕) _ 육촌생(六寸生)
유감삼수(有感三首) _ 강개생(慷慨生)
유감삼수(有感三首) _ 강개생(慷慨生)
유감삼수(有感三首) _ 육수생(六守生)
망서유감(望西有感) _ 은우생(隱憂生)
건원절 경축(乾元節 慶祝)
잡록(雜錄)
회사요록(會事要錄)
회원 소식(會員消息)
신입 회원(新入會員)
용의지회 신입 회원(龍義支會 新入會員)
태극학보 의연금 제4회 평양찬성인씨명연속(太極學報 義捐金 第四回 平壤贊成人氏名連續)
해제
태극학회는 1905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단체이다. 처음에는 후배 유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출판을 통한 계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국내의 계몽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09년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통합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1906년 8월 조직이 정비되어 학회지인 『태극학보(太極學報)』를 창간했다. 『태극학보』는 이윤주(李潤柱), 문일평(文一平) 등의 의연금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회원의 의연금과 학보 판매금, 유지의 찬성금(贊成金)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7월에는 175명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의연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편집에는 김낙영·김홍량(金鴻亮)·김지간 등이 관여했다. 1907년 3월 학보편찬원 8인을 신설해 학보 발간에 주력했다.
『태극학보』는 1906년 8월 24일 제1호를 창간한 이래 매년 8월을 제외하고 1908년 12월까지 27호를 발간했다. 학보의 크기는 A5판, 분량은 52∼72면 정도였다. 처음에는 1,000부를 발행했으나 호응이 커서 2,000부까지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극학보』는 일본, 서울 및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사(共立申報社)를 통해 미주에도 배포되었다.
『태극학보』는 대개 논단·강단·학원(學園)·문예·잡보·기서(寄書)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논단에는 국내 현실과 애국적인 논설을, 강단과 학원에는 계몽적인 학문의 소개를, 문예에는 문학작품을, 잡보에는 유학생의 활동과 국내외의 정세를 실었다.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한 만큼 계몽적인 학술내용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논설류도 많았다. 그러나 발행 장소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사는 일체 싣지 못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