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 구분
- 단행본 > 문학 > 신소설
- 제목
-
- 한글목단화
- 한문牧丹花
- 국한문목단화(牧丹花)
- 저자
-
- 저자 김교제
- 출판사
- 광학서포
- 발행지
- 경성
- 발행일
- 1911년
- 형태
-
- 세로21.5cm
- 면수168page
해제
『목단화』는 한 송이 모란꽃이 그려져 있는 화려한 색감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복각본의 저본은 1911년 광학서포에서 간행된 초판으로, 국망(國亡) 이후인 만큼 판권지에 일본 연호가 기재되어 있지만 ‘번인불허(飜印不許)’라 찍힌 저작권 표시 한복판에는 조선 왕실의 상징인 오얏꽃이 그려져 있다. 아속(啞俗) 김교제의 첫 소설로서 연재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바로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으로 확인된다.
『목단화』 역시 대부분의 신소설처럼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대한제국 시기 개화파 이참판의 딸인 정숙이 계모 탓에 갖은 수난을 겪지만 교육계 명사로 입신해 귀환한다는 것이 큰 줄거리다. 정숙은 시집갔다 쫓겨난 문제적 경우다. 완고한 박승지 가(家)에서 감히 학교 다닐 것을 청하고 게다가 계모의 모함 탓에 품행마저 의혹을 산 탓이다. 소설 첫머리를 보면 분개한 아버지 이참판이 개가 운운하는 데 반해 정숙은 남편을 믿고 정조를 지킬 것을 주장하는데, 이런 장면은 신소설에서 전형적이다. 전형적 전개대로라면 정숙은 수난을 겪고 눈물깨나 쏟은 끝에 남편과의 재결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성적 수난 극복하고 입신에 성공
과연 『목단화』 전반부 2/3는 아버지가 멀리 유배당한 후 정숙이 집밖으로 내몰려 갖은 수난을 경험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정숙은 계모의 음모로 창루(娼樓)에 팔려갔다가, 요행 은인을 만나 의주에 있는 그 집에서 수년을 보내지만, 악인들의 재등장으로 도망쳐 나온 후 다시 한두 차례 고난을 겪는다. 이 때 정숙의 수난은 예외 없이 성적 수난이다. 경제적 궁핍이나 사회적 고립 등이 그 자체로 문제되는 일은 없다. 특이한 점은 서너 차례 위기를 겪은 후 나머지 분량에서 정숙의 정체성이 전혀 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다. 당시 정숙은 도망쳐 나오던 길에 남복(男服)한 상황이었는데, 우연히 들른 인가에서 교사직을 제의받고 수락, 이후 1년을 의주 서흥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게 된다.
『목단화』는 이렇듯 여성 주인공이 교육받은 효과를 사회적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텍스트다. 정숙은 사범학교 우등졸업생이지만 이것은 신소설의 여성 주인공 태반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다. 그러나 다른 주인공들이 신교육 이력과 무관하게 집밖에서의 수난에 무기력한 반면 정숙은 이를 현실적 자본으로 삼으며, 다른 주인공들이 출세한 남편을 동부인(同夫人)하는 결말에 만족하는 반면 정숙은 그런 결말을 거부한다. 비록 후반부 1/3에 와서의 뒤늦은 분발이긴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도 『목단화』는 충분히 이채롭다.
돌이켜 보면 정숙은 창루에서도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정도의 담력을 보인 바 있기는 하다. 겁간하려는 남성에 맞서 놋화로를 집어던져 중화상을 입히고 거의 탈출에 성공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해 제3자에 의한 구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지만 이렇듯 물리적 폭력까지 불사했던 면모는 그것대로 독특하다. 서흥학교 교사가 되고 몇 달 후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계속 교사직을 지키고 의주 지방을 문명케 한다는 설정은 아마 그래서 가능했을 터이다. 1년간 교육과 계몽의 사명을 달성한 후 정숙은 다른 신체가 되어 서울로 돌아간다. 경의선 기차 정거장마다 환송인파가 넘치는 후대(厚待) 속에서다. 심지어 정숙은 신안주 정거장에서 도도하게 여자교육론을 전파할 연설 기회를 갖기도 한다.
신소설 작가는 신흥계급 출신?
정숙의 이러한 여정이 정숙을 구원한 은인 황동지 집 딸 금순의 역정과 겹친다는 사실도 주목해 볼 만하다. 참판의 딸 정숙과 일개 동지의 딸 금순은 정절을 지킨다는 방식으로 자존과 주체성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상징적 일체성을 이룬다. 정숙의 귀환과 금순의 무사귀가는 서로 맞물리며 훼손된 질서를 복원시킨다. 『치악산』 하편과 『현미경』 등 김교제의 이후 소설까지 시야에 두고 보자면 이렇듯 여성 주인공의 사회성과 계층을 넘나드는 횡단성을 강조하는 것은 작가의 독특한 면모다. 김교제는 이인직이 쓴 『치악산』 전편에서는 일개 시비(侍婢)에 불과했던 검홍을 『치악산』 하편에서 도덕가이자 지략가로 만들고, 『현미경』에서는 기껏 감역의 딸에 불과한 주인공이 고관(高官)의 목을 베게 만든다.
1910년 이후 이같은 시도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신소설의 몫이 비단 문명론과 민족의식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케 해 준다. 신소설은 1900년대에 새로 난 주체들, 즉 여성이나 평민 등의 생활감각을 소묘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양식이다. 『목단화』의 저자 김교제는 그 아버지가 군수를 지낸 양반가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저자에 대해서도 더 자세한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상업학교를 다녔고 능참봉을 지냈다는 것으로 보면 그의 이력은 양반가 후손의 그것이라기보다 신흥계급에 있음직한 정황에 더 가까워 보인다. 혹 이런 추정이 더 구체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면 신소설이라는 양식의 생산계층에 대해서도 다소의 사회적 구명을 좀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서자였던 이인직, 서리의 아들이었던 최찬식 등의 예를 통해 볼 수 있듯 신소설 작가 일반이 신흥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작가 김교제와 『목단화』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신소설이라는 양식과 그 생산층에 대해서도 아직 미지의 몫이 크다.(해제: 권보드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