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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구분
단행본 > 문학 > 신소설
제목
  • 한글은세계 상권
  • 한문銀世界 上卷
저자
  • 저자 李人稙 이인직
  • 출판사
    동문사
    발행지
    경성
    발행일
    1908년
    형태
    • 세로22.5cm
    • 면수141page

    표지화 (삽화,컷)

    해제

    1900년대 당시 소설 양식이 애국애족과 국가개조라는 이중의 과제를 추구하고 있었다고 할 때, 이인직의 『은세계』는 어떤 신소설보다 강렬하게 그 추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전반부가 그렇다. 소설은 눈 날리는 강릉 한겨울밤, 일단의 감영 군사가 산골 부자 최병도 집에 쇄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불문곡직 최병도를 체포한 군사들이 이튿날 길을 떠나려는 참인데 동리 사람들이 험악한 기세로 모여든다. 최병도의 친구 김정수가 민란을 선동한 까닭이다. 이렇듯 『은세계』는 처음부터 부패한 관료와 불온한 민심을 보여준다. 최병도는 친구의 흥분을 가라앉힌 후 자진해 감영으로 끌려가고, 토색(討索)이 목적인 감사의 취조에 당당하게 맞서다가 장하(杖下)에 죽는다. 한때 갑신정변 주모자들과 의기투합했던 최병도인 만큼 최후는 영웅적이다. 이후 『은세계』는 최병도의 후계자, 어린 딸 옥순과 유복자로 태어난 옥남이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개혁의 능력을 갖춰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신연극’ 활자로 집자한 표제
    이 극적인 줄거리의 소설은 연극으로 상연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설이 채 다 완성되기 전 공연이 있었다고 하니 소설과 연극이 동시에 집필·기획된 것일 텐데,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연극은 제1세대인 최병도의 수난담만을 다루었다고 한다. 판소리 광대가 출연하는 창극 공연이었고 ‘최병도 타령’이라고도 불렸다고 전한다. 원각사에서 진행된 공연 준비 과정에는 이인직이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하듯 단행본 『은세계』는 그 표제 글자인 은, 세, 계를 각각 신(新), 연(演), 극(劇)이라는 작은 활자를 집자(集字)해 만들었다. 이해조의 소설 『구마검』 등도 ‘연극소설’이라는 표제를 단 적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신소설과 연극 사이 관련은 더 고구(考究)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은세계』는 실제 현실과의 관련에 있어서도 흥미로운 사례다. 소설 『은세계』 초반부에는 “그 때 강원 감사의 성은 정씨인데 강원 감사로 내려오던 날부터 강원 일도 백성의 재물을 긁어 들이느라고 눈이 벌개서 날뛰는 판”이라는 서술이 나온다. 이처럼 구체적인 서술은 실제 모델의 존재를 강하게 암시하는데, 과연 연극으로 『은세계』를 공연할 당시에는 전 강원 감사 정헌시의 자손들이 소란을 피워 연극이 중단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최병도의 사연이 어디서 연원한 것인지는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역시 모델이 있기 쉬울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은세계』의 사례는 “실지 사적” “현금 사람의 실적”에 바탕을 두었음을 즐겨 내세웠던 신소설 일반의 전략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은세계』 후반부는 여러모로 전반부와 다르다. 차라리 체제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드러내며 죽기를 택했던 최병도 식의 강렬한 저항의식도, 부패한 현실을 직접 폭로한 고도의 비판정신도 후반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문체마저 큰 차이가 있다. 전반부에서는 대사와 지문에서 판소리조를 일관되게 채용한데다 모내기노래 등 민간의 구비전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후반부에서는 그런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아 생동감 넘치는 동시 비장미가 돋보이는 전반부에 비해 『은세계』 후반부는 서사적으로 무미(無味)하며 묘사는 평범하다.

    후반부는 보수적 현상유지론으로 퇴행
    아버지 최병도의 유지를 잇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난 옥순과 옥남 남매는 이국을 떠도는 연약한 영혼일 뿐이다. 이들은 유학 자금을 대던 김정수의 지원이 끊기자 자살하려고 거리에 나서고, 우연히 만난 미국인의 호의에 기대 장장 10년이 넘는 유학 생활을 이어간다. 이국땅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차별과 불합리, 회의와 성찰 등은 다 불문(不問)에 부쳐진 채로다. 별다른 굴곡 없이 성년에 이른 옥순 남매는 1907년 고종 퇴위와 순종 즉위를 알리는 신문기사를 보고 귀국을 결심한다.
    이후 소설은 최병도가 죽은 후 실성해 있던 그 부인이 옥순 남매와 재회한 후 제정신을 차리는 후일담을 거쳐 이들이 의병 세력과 마주치는 장면에서 갑작스럽게 끝난다. 당시는 고종 퇴위와 더불어 군대 또한 강제 해산된 직후, 의병 운동이 고조된 시점이다. 『은세계』 마지막 장면의 ‘무뢰배’들이 의병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느덧 청년이 되어 가족을 대표하게 된 옥남은 산속 절에서 의병을 만났을 때 나라의 현실에 함께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수십년래 학정과 부패를 생각하면 국권 상실도 당연하다는 투로 일장 연설을 한다. “우리나라 국권을 회복할 생각이 있거든 / 황제폐하 통치하에서 부지런히 벌어먹고 자식이나 잘 가르쳐서 국민의 지식이 진보될 도리만 하”라는 것이 옥남의 결론이다. 지극히 소극적인 직분론이 옥남의 이념인 셈이다. 당연한 반응으로 의병들이 옥남을 묶어 끌고 가는 데서 소설은 끝난다.
    『은세계』는 1894~1905년의 시기를 대상으로 할 때는 개혁적 입장인 신소설이 1905~1910년이라는 더 가까운 당대를 상대할 때는 현저하게 퇴행해 버리는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소설은 1905~1910년을 미래로 설정하고 아직 어린 옥순·옥남 남매를 보여줄 때라야 계몽과 민족의식을 주장할 수 있다. 옥남이 다 커서 보여주는 노선은 보수적 현상유지론이 고작이다. 이 면모는 이인직에게 가장 약여(躍如)하지만 기타 신소설 작가에게도 공통된 것으로 보인다. 혹 『은세계』가 옥남이 의병에게 잡혀간 이후까지 다루었다 해도 그 결말이 현재대로의 결말과 크게 다른 의미를 산출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오랫동안 기약했던 미래가 현재형으로 집행되어야 할 때, 특히 이인직의 신소설은 그 점에서 무능력했기 때문이다.(해제: 권보드래)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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