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학술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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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대한협회회보 7호
- 한문大韓協會會報 7號
- 발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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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인조완구
- 인쇄인 주소漢城 北部 齋洞
- 편집 겸 발행인홍필주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漢城 中部 塔洞
- 출판사
- 大韓協會事務所 대한협회사무소
- 발행지
- 漢城 中部 塔洞 32統 加1戶
- 인쇄소
- 普文館 보문관
- 인쇄지
- 漢城 北部 安峴
- 창간일
- 1908년 4월 25일
- 간행일
- 1908년 10월 25일
- 인쇄일
- 1908년 10월 24일
- 통권
- 7호
- 간별
- 월간
- 형태
-
- 면수70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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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료18자 1행 40전 원
목차
정부 당국자의 맹성을 재경홈(政府當局者의 猛省을 再警홈) _ 대한자大韓子
금일오인(今日吾人) _ 이종호(李鍾浩)
우변이불변칙태(憂變而不變則殆) _ 이종린(李鍾麟)
격치학의 공용(續)(格致學의 功用(續)) _ 여병현(呂炳鉉)
교육문제(敎育問題) _ 노랑거사(蘆浪居士)
상업의 발달(속)(商業의 發達(續) _ 권동진 술(權東鎭 述)
생리분리의 별(속)(生利分利의 別(續)) _ 이종준 중역(李鍾濬 重譯)
농업개요(農業槪要) _ 중고초부(中臯樵夫)
과목배양법(속)(果木培養法(續) _ 중고초부(中臯樵夫)
경제계(經濟界) _ 김광제(金光濟)
정치의 진화(제5호속)(政治의 進化(第五號續)) _ 원영의(元泳義)
정부의 성질(政府의 性質) _ 안국선(安國善)
국민과 정치의 관계(國民과 政治의 關係) _ 변덕연(卞悳淵)
법률을 불가불학(法律을 不可不學) _ 중악산인(中岳山人)
역사 태조고사(歷史 太祖故事) _ 현은(玄檃)
지지(地誌) _ 현은(玄櫽)
대한 삼십년 외교사(속)(大韓三十年外交史(續) _ 운계생(雲溪生)
술악부사(五絶)(述樂府辭(五絶) _ 괴애 김수온(乖崕 金守溫), 추성자 집(秋聲子 輯)
백아(伯牙) _ 고원위신 항(高原尉申 沆), 추성자 집(秋聲子 輯)
곡란(谷蘭) _ 회원 신규식(會員 申圭植), 추성자 집(秋聲子 輯)
추강즉사(秋江卽事) _ 회원 이종린(會員 李鍾麟), 추성자 집(秋聲子 輯)
노장시(七絶)(老將詩(七絶)) _ 박장군 휘겸(朴將軍 撝謙), 추성자 집(秋聲子 輯)
심화고사(尋花古寺) _ 풍월정 월산대군(風月亭 月山大君), 추성자 집(秋聲子 輯)
마도주중(馬島舟中) _ 풍월정 월산대군(風月亭 月山大君), 추성자 집(秋聲子 輯)
새하곡(塞下曲) _ 우련 이종린(又蓮 李鍾麟), 추성자 집(秋聲子 輯)
류서(柳絮) _ 회원 이용재(會員 李容宰), 추성자 집(秋聲子 輯)
계상도(溪上桃) _ 완석 류지유(阮石 柳芝莠), 추성자 집(秋聲子 輯)
추야만음(秋夜謾吟) _ 용파 이두현(蓉坡 李斗鉉), 추성자 집(秋聲子 輯)
차중씨고원망고대운(사율)(次仲氏高原望高臺韻(四律) _ 난설헌 허씨(蘭雪軒 許氏), 추성자 집 (秋聲子 輯)
영탄(詠憚) _ 동농 김가진(東農 金嘉鎭), 추성자 집(秋聲子 輯)
관보 초록(官報抄錄)
내지 휘보(內地彙報)
외국 정형(外國情形)
동양척식주식회사 영업에 관 일본 대장성 설명서(東洋拓殖株式會社 營業에 關 日本 大藏省 說明書)
본회 역사(本會歷史)
명륜당의 본령과 본지회의 취지(明倫堂의 本領과 本支會의 趣旨) _ 포천군지회 총무 박희인(抱川郡支會 總務 朴喜寅)
회원명부(會員名簿)
주식회사 한일은행 4기 영업보고(株式會社 韓一銀行 四期 營業報告)
해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가 일제 통감부에 의해 강제해산된 뒤 대한자강회의 고문이던 오가키(大垣丈夫)가 이토(伊藤博文)의 내락을 얻어 1907년 11월 10일 윤효정(尹孝定), 장지연(張志淵) 등 이전의 대한자강회 간부들과 천도교의 대표로서 권동진(權東鎭), 오세창(吳世昌) 등을 추가시켜 10명으로 대한협회를 조직했다.
“교육의 보급, 산업의 개발, 생명재산의 보호, 행정제도의 개선, 관민폐습의 교정, 근면저축의 실행과 권리, 의무, 책임, 복종의 사상을 고취”라는 7개 항목을 강령으로 내걸었다.
1908년 4월부터 매월 『대한협회회보』를 발행해 국민들을 지도, 계몽했으나, 경비 부족으로 통권 12호로 종간했다. 회보는 매월 2,000부 이상 발행해 국내는 물론 중국·일본·미국에까지 보급했다. 회보발행소장은 홍필주(洪弼周), 편집 겸 발행인은 이종일이 맡았다.
대한협회는 본래 의도했던 주권수호 등의 정치적 활동은 수행하지 못하고 1910년 국권상실 후 해체되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